길할 길(吉) 아 진짜 인생 재미없고 한자는 그 중에 제일 재미없다. 시발. 백현은 한자 시험 3급에 삼수 중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름지기 한자 3급 정도의 지성은 갖추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엄한 명령 때문이었다. 발단은 간단했다. 평소 아들의 지적 능력에 관해서 별 관심이 없던 아버지가 장난스레 말을 던졌다. 아들, 그래도 자기 이름은 한자로 쓸 줄 알지?...
경수는 가끔 모래를 떠올렸다. 운동장을 생각했다. 견디던 것들을 생각했다. 아버지가 뭐라뭐라 고함을 쳤고 경수는 울었는데 결국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장난감 총을 잘 다뤘었다. 손가락에 살짝 힘만 주어도 튀어 나가는 총알을 보며 어렵진 않을 거라고 자신했었다. 누군가에게 지더라도 속상한 티를 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그렇지만 운동장은 너무 더웠고 아버...
사람 사주 보는 것 중에 살 있잖아. 살(煞). 내가 심심풀이로 해본 적 있는데 지살도 있고 역마살도 있는거야.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어. 해봤는데. 둘 다 표류하는 살이래. 떠도는 살인데. 역마살은 들개고 지살은 들고양이래. 무슨 말이냐면, 역마살은 들개라 어디를 가든 잘 적응하고 낯선 사람하고도 쉽게 친해지는데 지살은 들고양이라 살던 곳을 떠나면 고달픈 ...
* 257멋없다. 258변명하고자 하는 말이 모두 그랬다.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라, 정말 그게 아닌데. 259 넌 나이가 어린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잖아. 마음이 어린 사람을 피하는 거였잖아. 내 마음이 얼마나 넓은데. 내가 얼마나 어른스러운데. 이런 일이 닥쳐도 침착하게 널 설득하고, 여덟살 차이 같은 건 우리가 사랑하는 데 있어서 대수로울 것도 ...
* 193경수는 이런 인연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다. 매체를 불문하고 로맨스는 취향이 아니다. 194하지만 사람은 로맨스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195백현이 경수 쪽으로 가까이 앉는다. 면대면으론 처음이니 어색할 법도 한데 거침없었다. 경수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애를 쓴다. 핸드폰으론 잘만 말했던 것 같은데 막상 만나니 어떤 말도 잘 꺼내지 못했...
* 120저기요. 121손님은 아무렇지도 않다. 기민한 백현의 심장만 걷잡을 수 없게 뛴다. 평소보다 손이 굼떠진다. 주문이 밀리는데도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 웬만한 신경이 애먼 데로 쏠려있다. 백현 입장에선 그리 애먼 구석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 요즈음 백현을 제일 긴장하게 하는 것. 닳도록 들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러나 싶다. 좋아하는 노래의 전주만...
* 59실수한건가. 60그냥 이르다는 말인데. 꼭 거절처럼 들려서. 61아 그럴 수도 있죠.대신에 카톡으로 넘어갈래? 62백현은 룰을 잘 모른다. 그제야 어플이 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나이/포지션] 만 덜렁 적혀있는 화면은 무심하기만 하다. 대화는 막 주고받는 맛인데, 한 번에 여러말을 하려면 꼭 책처럼 말이 길어진다. 상대방이 떠드는 얘기에 ...
* 1변백현과 도경수는 같은 어플을 쓴다. 2게이 데이팅 어플이다. 3도경수는 [서울/28/바텀]이고 변백현은 [경기/25/탑]이다. 몇 가지 거짓도 섞여있다. 4변백현은 이제 막 스무살이 됐다. 대학 문턱도 못 밟아봤다. 친구들끼리는 19.9세라고 부른다. 새내기는 됐지만 큰 흥미는 없다. 오티 필참이라고 다섯 번이나 문자가 오길래 수신 차단을 해두었다....
* 시덥지 않은 것이 궁금해 질 때가 있다. 왜 일주일은 7일인지. 모든 사람이 월요일과 일요일을 가지고 있는지. 매일이 똑같은 나라의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느끼는지. 이를테면 센터같은 곳에선. 이 곳에선 시간을 느끼기가 어렵다. 낮과 밤만이 반복된다. 성큼 다가온 봄이나 찌는 듯한 여름. 추운 냄새가 나는 가을과 새하얀 눈. 투명한 유리벽 너머의...
※홈에 있던 단편입니다. 꾼인걸 몰라서 당하나 백현은 싸구려 명언을 떠올린다. 인스타그램에 널린 두 줄 짜리 위로를 훑는다. 요즘 사람들은 쉼표만 있으면 그럴 듯 해 보이는 줄 안다지. <사랑, 할까요>나 <오늘, 힘들었더라도> 같은 것. 백현은 쉼표를 많이 쓰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다. ‘쉼표’라는 말 부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어...
* 둘 다 징계를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김민석은 무시하라며 코웃음쳤다. 센터에서 등급 높은 사람을 혼낼 리가 없어요. 장담하죠. 키스로 혼이 나는 세상이라니. 지구 제일 끝단의 후진국에 와있는 것도 아니고. 사유는 그랬다. 변백현은 제 때 가이딩을 받지 않아서, 나는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 가이딩을 해서. 나는 센터도 대한민국의 기관임을 여기서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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